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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20)]

  • 관리자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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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젠 불안을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간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안하지 않은 세대가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 ‘두려움에 떨며 공부하고, 성공을 향해 쉬지 못하고 전진하고, 성공 근처에 갔지만 여전히 두려운’ 또 다른 민준 씨들이 아닐까. 불안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은 물론 사회적 차원의 구조 개혁이 동시에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안하지 않은 세대가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 ‘두려움에 떨며 공부하고, 성공을 향해 쉬지 못하고 전진하고, 성공 근처에 갔지만 여전히 두려운’ 또 다른 민준 씨들이 아닐까. 불안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은 물론 사회적 차원의 구조 개혁이 동시에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 이야기
20년 간 달려왔어요.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아요. 내년에는 임원을 달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아요. 문제는 제가 숨기고 있는 심각한 내적 긴장감과 불안이에요. 저는 한 번도 제게 만족한 적이 없어요. 남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거짓말이야. 칭찬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괜히 띄워주는 거야’ 라고 생각해요. 수치로 좋은 결과가 나와도 저는 제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겸손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게 아니에요. 저는 사실 거만한 편이에요. 좋은 성과를 내서 다들 술을 마시러 가도 저는 각종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 일을 구상해요. ‘너희가 나를 해이하게 만들어서 무너뜨리려고 해도 나는 무너지지 않아’ 라고 생각해요. 저는 병적 완벽주의자 같아요.

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부모님 영향 같아요. 두 분 다 엄격하셨어요.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저녁에 집에 오실 때 한 번 긴장하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오시면 다시 한 번 긴장하는 식이었어요. 장남인 제게 특히 엄격하셨기에 저는 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친구들은 1등을 하면 자전거 선물도 받던데 저는 1등을 해도 ‘운이 좋은 것을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라’ 라는 말을 들어야 했어요.

오래된 기억 하나 얘기할 게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받아쓰기 시험을 완전 망쳤는데 그날 저녁 시험지를 본 어머니가 ‘이런 바보는 필요 없으니 그냥 굶어죽든가 창문 열고 뛰어내려 죽어버려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너무 놀랐어요. 그때부터 공부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 저는 명문대에 입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어요. 대기업에도 입사했고, 회사에서 만난 아내와 단란한 가정도 꾸렸어요. 이런 제 스펙이 그럴싸할지 몰라도 사실 제 내면은 전혀 그러하지 못해요. 불안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어려서부터 포장을 했어요. 부모님에게도, 아내에게도, 친구에게도 한 번도 제 속을 털어놓고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긴장은 풀어지지 않는 거예요. 아무리 피곤해도, 심지어 잠자고 있을 때에도 긴장해 있어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은 적도 몇 번 있었어요. 구석에 가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을 앉아있으면 가라앉더라고요. 공황장애일까요? 지난 주에는 치과에 갔더니 양쪽 어금니에 금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가 ‘도대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살기에 이러냐’고 물었는데 픽 웃고 말았어요.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이것을 고백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올해 초 내시경 검사를 하느라 수면 마취를 했어요. 아는 병원에서 VIP 대우를 해주어 개인실에서 수면 마취를 해주었어요. 프로포폴을 사용했죠. 그런데 잠이 드는 순간 제 긴장감이 ‘툭’ 하고 풀리는 거예요. 자고 일어나니 너무 개운했어요. 신세계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후 미뤘던 건강검진을 하면서 프로포폴을 세 번 더 맞았어요. 지금도 긴장을 풀고 푹 자고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다가 프로포폴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아직까진 의지력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제 삶은 위태롭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안의 원인이 된 심리적 문제는
대부분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

인생에서 중요한 대상을 만날 때
마음이 치유되는 기회 얻을 수도

어떤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나고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점차 공황장애 증상 조절 가능해

■ 상담
민준씨(가명).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우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해요. 야생에 사는 토끼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만약 토끼가 불안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금방 큰 짐승의 먹이가 될 거예요. 토끼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소리에 반응하고 도망칠 수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이에요. 불안을 느끼면 우리 몸에서는 아들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것이 생존본능을 자극해서 자신을 보호하게 돼요.

문제는 이 불안감이 과도할 때에요. 과도한 불안감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많은 심리적 문제들이 있어요. 범불안장애, 각종 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그것들이에요.

불안이 원인이 된 심리적 문제는 대부분 어린 시절 경험했던 어떤 사건이나 환경과 관련이 있어요.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경험을 했다거나, 사랑하는 존재와 갑자기 이별을 해야 했다거나, 크게 망신을 당해 수치심을 느꼈다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자랐다거나 등등 말이에요.

민준씨는 학창 시절 긴장이 불러온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 자신을 경쟁 속으로 몰아넣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완벽주의적 성향이 만들어졌을 거고요. 완벽주의자들은 ‘조금 더’ 라는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어요. ‘조금 더 공부를 잘하면 인정받을 거야,’ ‘조금 더 돈을 벌어야만 쉴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게 돼요. 아무리 잘한다 해도 부족함을 느끼니 온전한 만족감을 가질 수 없어요. 완벽주의자들의 삶은 이런 비극이 예정돼 있어요.
‘불안한 마음’은 안타깝게도 얌전하게 있지 않아요. 불안을 해소하려고 행동을 불러일으켜요. 이것을 ‘행동화’ 라고 해요. 이 행동화가 운동, 명상, 상담, 건강한 관계와 같은 좋은 방향으로 일어나면 좋지만, 많은 이들이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알콜, 도박, 마약과 같은 중독, 쾌락, 자해 등을 선택하기도 해요. 민준씨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 앞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불안의 반대말은 평안이에요. 마음의 평안은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 경험 속에서 생겨나게 돼요.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부모의 애정 어린 눈빛을 보고 ‘아, 나는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부모님처럼 자신을 좋아해줄 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돼요.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지 않거든요.

인생에서 중요한 대상을 만났을 때 마음이 치유될 기회를 다시 얻을 수도 있어요. 좋아하는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지지와 위로와 사랑을 받는 동시에 그것들을 줄 때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준씨는 친구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준 적이 없는 같아요. ‘똑똑하지 못하고, 유능하지 못하면 저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지금이라도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실 어느 정도는 불안해도 돼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을 인정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토로하며 지내게 돼요. 이런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불안은 극복되곤 해요.

불안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해요. 민준씨를 고통스럽게 하는 공황장애도 마찬가지이에요. 어떤 상황에서 이 증상이 나타나는지, 왜 이 증상이 생겼는지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면 점차적으로 공황장애 증상을 조절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민준 씨! 불안을 동력 삼아 성공을 향해 달려온 건 여기까지가 유효한 것 같아요. 이제 여기서 과감하게 멈추어야 해요. 인생이라는 장거리를 잘 뛰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정말 마음을 돌볼 때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제언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안하지 않은 세대가 없다. 10대는 대학에 떨어질까 불안하고, 2030세대는 취업이나 결혼의 미래가 불안하고, 4050세대는 아이들의 교육 부담을 안은 채 구조조정으로 퇴출되지 않을까 불안하고, 60대가 넘으면 노후의 삶 자체가 불안하다. 상담사인 내게 이 불안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벌주의, 경제 양극화, 노후 빈곤 등의 사회적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 ‘두려움에 떨며 공부하고, 성공을 향해 쉬지 못하고 전진하고, 성공 근처에 갔지만 여전히 두려운’ 또 다른 민준씨들이 아닐까. 불안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은 물론 사회적 차원의 구조 개혁이 동시에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

▶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826160703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 https://youtu.be/s0sPyPmft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