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은퇴 후 공허한 삶, 작은 도전들로 채워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24)]

  • 관리자
  •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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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갈까?

 

2030년에는 60세 이상 고령세대가 전체 인구의 30%에 도달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사회복지정책과 정신적 고독을 해소할 교육·심리 프로그램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활기찬 100세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이제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과제일 것이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2030년에는 60세 이상 고령세대가 전체 인구의 30%에 도달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사회복지정책과 정신적 고독을 해소할 교육·심리 프로그램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활기찬 100세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이제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과제일 것이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신청>

전자 관련 대기업을 다닐 때에는 나름 좋았어요. 분주한 나날들이었고, 급여도 넉넉했어요. 아내 역시 일하고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맞벌이라서 아파트도 일찍 샀고, 저축도 제법 해놓았어요.

5년 전에 두 살 어린 아내가 저보다 한 해 일찍 퇴직을 했고, 제가 이어서 은퇴를 했어요.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미리 생각해 놓아야 했는데, 돌아보면 아무런 준비 없이 은퇴하게 된 게 가장 아쉬워요. 은퇴 이후 첫 1년은 좋았어요. 느긋하게 하루를 즐기고 해외여행도 아내와 함께 떠나니 참 좋더라고요.

은퇴하고 두 해가 지난 다음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느낌이었어요.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어서 서로 무척 각별했었어요. 아내 장례를 치루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당히 당황스럽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도 주위에 아무도 없고, 약속이 없는 날은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고, 저녁 또한 주로 혼자 먹으려니 참 쓸쓸했어요.

이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친구들과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북한산도 가고 관악산도 가고 서울 인근 산은 모두 다 간 것 같아요. 그런데 산행을 마친 후 점심을 먹는데 술을 함께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산행을 하러 가는 건지 술을 먹으러 가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나홀로 산행은 구속을 받지 않아서 좋지만, 아무래도 쓸쓸한 건 피할 수 없지요.

시간이 많다 보니 유튜브를 자주 보게 돼요. 처음에는 다양하게 시청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 분야에 집중하게 됐어요. 친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유튜브를 보고 집회에도 참여하던데 저는 그러하진 않았어요. 저 역시 기성 정치권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정치는 정치권에 맡겨야 하지 않나 생각되거든요. 요즘은 정치 관련 분야보다는 흘러간 노래들을 모아 놓은 채널에 들어가서 음악을 많이 듣고 있어요. 건강 관련 채널도 자주 방문하는 편이에요.

책은 많이 읽지 못해요. 젊은 시절에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중년 이후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 김형석 교수님의 <백년을 살아보니>였어요. 공부를 하고 봉사를 하라는 말씀이 참 와닿았어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려다보니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하는지 잘 모르겠고, 봉사 활동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찾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혼자 저녁을 차려서 먹은 후 TV를 좀 보다가 생각해 보면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져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차분한 게 아니라 울적한 것 같기도 해요. 즐겁게 지내려고 하지만, 사실 즐거운 일들이 거의 없는 셈이지요. 직계가족이 없다 보니 이젠 형제들을 만나도, 조카들을 만나도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서게 돼요. 요즈음 이렇게 의미 없이 나이만 먹느니 차라리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거 우울증인가요?

선생님을 찾은 까닭도 여기에 있어요. 우리 세대가 상담에 익숙한 세대는 아니지만, 우연히 유튜브에서 상담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역시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가까운 후배가 선생님을 추천해줘서 용기 내어 연락을 드렸어요.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에게 요청을 받으시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울적한 나날들이 계속되는데, 우울증 초기 증상인가요? 건강에 나름 신경을 쓰고 있지만, 사는데 갈수록 흥미가 없어져 가요. 인생이 ‘공수래 공수거’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고는 싶어요. 남아 있는 인생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할 터인데, 그게 잘 보이지 않아요. 젊은 분에게 드리기 민망한 질문이지만,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상담 내용>

박승환님(가명).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터놓고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나이도 더 어리고 인생 경험도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상담사로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울증은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흥미상실, 식욕, 수면 변화, 피로, 자살 생각 등으로 일상 생활이나 직업상 곤란을 겪는 경우’에 진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박 선생님은 운동도 잘 하시고 식사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니, 우울증은 아니실 듯합니다. 우울증이 걱정되신다면 정식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5~20%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질병입니다. 치료를 잘 받으시면 충분히 이겨내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의 주요 문제는 우울증이라기보다 상실감인 것 같아 보입니다. 준비를 잘한 채 은퇴를 맞으신 분들도 사회적·개인적 의미가 상실한 것에 대해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경우는 사회적 관계가 일과 연결되어 있는 사례가 많아서 만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과 사람이 없어진다면 누구나 깊은 상실감으로 슬픔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다 선생님은 특수한 상황을 겪으셨습니다. 은퇴하신 지 얼마 안돼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으셨습니다. 배우자를 잃는 것은 스트레스 지수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요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게다가 자녀가 없이 두 분이 알콩달콩 살던 사이셨으니 다른 분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힘들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김형석 교수님 책은 저도 읽어 보았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책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제게 인상적인 것은 늙는다는 게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김 교수님의 발언입니다. 김 교수님은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젊은 세대에겐 존경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셨고, 공부와 취미와 봉사는 이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참 적절한 충고이자 지혜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상담학에서 요즘은 노화를 노쇠해가는 것이 아니라 발달과 성장의 과정으로 보는 견해가 강합니다. 저는 삶의 발전을 멈추면 노인이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면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 노인상담 이론은 노년기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합니다. 먼저 개인은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친구관계 등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교육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자기 개발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재취업과 자원봉사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고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 선생님, 이제 산행 이외에 다양한 취미활동을 해보면 어떠하실까요? 스포츠, 문화, 글쓰기, 요리 등 요즘은 취미활동이 매우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저 역시 취미활동을 하는데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커뮤니티에 ‘실버 바리스타’ 모임이 있는데, 60~70대 회원들이 한 달에 2회씩 멋진 카페에서 커피에 대해서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공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근사하고 커피 맛도 좋습니다.

봉사 활동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만이 갖고 있는 노하우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봉사활동입니다. 찾아보시면 자원봉사를 주관하는 시민단체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거리감을 느끼시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경우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마음이 힘들어지면 ‘별 도움이 안되는 나를 사람들이 귀찮아 할 거야’ 라고 미리 판단하고 스스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존감의 하락에서 오는 잘못된 판단일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에게는 힘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박 선생님은 이제 노년의 입구에 서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선생님이 느끼실 상실감을 채우기 어렵겠지만, 아직은 새로운 도전을 해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취미와 봉사 등에서 작지만 새로운 도전의 목표를 세워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에게만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는 제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랍니다.

<상담 후기>

우리나라에서 고령사회가 시작되면서 100세 시대가 관심을 끌어 왔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고령세대의 경제적 궁핍은 물론 정신적 고독이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상해 왔다.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건강 또한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곧 다가올 2030년에는 60세 이상 고령세대가 전체 인구의 30%에 도달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설령 준비하지 않았더라도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한 사회복지정책과 교육·심리 프로그램의 마련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의제다. 활기찬 100세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과제일 것이다.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은퇴 후 공허한 삶, 작은 도전들로 채워요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

▶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1118160000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